
겸재 정선 - 진경산수를 개척한 우리나라 화성
카테고리: 국내도서>역사>조선사>조선문화예술사
저자: 유홍준 (지은이)
페이지 수: 404p
출판사: 창비
출판일: 2026-02-01
가격: 22500원
평점: ★★★★★ (10.0)
인기 순위: 예술/대중문화 주간 1위
ISBN13: 9788936481100
소개
‘한국미술사 전도사’이자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시리즈의 저자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이 ‘새로 쓰는 화인열전’ 시리즈로 돌아왔다. 2001년에 출간된 초판 『화인열전』(1, 2권)을 전면 개정하고 새로운 내용과 도판을 대폭 추가하였다.
목차
책을 펴내며 / 『화인열전』 초판(2001) 책을 펴내며
1부 출생~45세: 겸재 예술의 출발
조선 후기 회화의 대가, 겸재 정선 / 겸재의 대표작 〈금강전도〉 / 겸재의 출신과 출생 / 장동 김씨와의 인연 / 스승, 삼연 김창흡 / 평생의 벗, 사천 이병연 / 그림의 벗, 관아재 조영석 / 겸재의 『주역』 연구 / 겸재의 회화 견문 / 겸재의 초년 시절 이력과 화력 / 중국 화본의 수련 / 중년의 남종산수화 《사계산수화첩》 / 《사계산수화첩》의 의의 / 겸재 중년의 득의산수
2부 36세~45세: 진경산수로의 길
신묘년 제1차 금강행 / 초년작의 생리와 특징 / 《신묘년 풍악도첩》의 특징 1. 부감법 / 특징 2. 수지법과 점경인물 / 특징 3. 유머와 서사성 / 임진년 제2차 금강행 / 조유수와 신정하의 겸재 평 / 당대의 안목, 이하곤의 겸재 평 / 사생산수와 진경산수 / 겸재의 〈망천12경도〉 / 청나라 마유병의 겸재 그림 평 / 〈회방연도〉 / 〈회방연도〉의 확장, 〈북원수회도〉 / 겸재 정선의 벼슬살이 / 40대 전반: 서울에서의 관직 생활
3부 45세~60세: 하양현감·의금부도사·청하현감
하양현감, 겸재 정선 / 신임사화와 장동 김씨의 수난 / 〈선면 누각산수도〉 / 조유수를 위한 《금강산 4첩소병》 / 김광수를 위한 〈망천도〉 / 《영남첩》 / 《구학첩》 / 〈쌍도정도〉 / 다시 서울로 돌아와서 / 〈의금부계회도〉 / ‘잡기로 발신’한 겸재 / 인곡정사로 이사하며 / 55세의 〈백운동도〉 / 56세의 〈서교전의도〉 / 겸재에게 쏟아지는 그림 주문 / 『학산한언』의 증언 / 겸재의 다작 / 겸재의 편지 / 청하현감, 겸재 / 영조에게 칭찬받는 겸재 / 〈월송정〉 / 〈내연산 삼용추〉 / 〈무송관폭도〉 / 다시 서울로 올라가는 겸재
4부 60세~70세: 인곡정사와 양천현령 시절
겸재 예술의 편년과 기준작 / 인곡정사에서 / 관아재를 위한 〈절강추도도〉 / 《관동명승첩》 / 〈청풍계도〉 / 〈서원소정도〉 / 〈장안연우도〉 / 〈세검정도〉 / 〈육상묘도〉와 〈황려호도〉 / 〈고사관폭도〉와 〈송음납량도〉 / 겸재의 화훼화 / 양천현령 / 시와 그림을 서로 바꾸는 벗 / 《경교명승첩》 / 《경교명승첩》의 양천10경도 / 《경교명승첩》의 한강유람도 / 《경교명승첩》의 시의도 / 《연강임술첩》 / 지방 수령으로서의 겸재
5부 70세~80세: 대기만성
겸재 노년의 화력과 이력 / 다시 벗들과 함께 / 〈사천 이병연 초상화〉 / 《칠선생시화첩》 / 〈취성도〉 / 〈장주묘암도〉 / 〈여산초당도〉와 〈여산폭포도〉 / 겸재의 부채 그림 / 71세, 〈계상정거도〉 / 《퇴우이선생진적첩》 / 《장동8경첩》 / 72세, 《정묘년 해악전신첩》 / 금강산 명화들 / 두 폭의 비로봉도 / 선묘의 추상성 / 관아재의 겸재에 대한 증언과 존경 / 국보 〈금강전도〉 / 겸재 금강전도들의 편년 / 왜관수도원 소장 《겸재정선화첩》 / 74세, 《사공도시품첩》 / 《사공도시품첩》 중 〈호방도〉와 〈자연도〉 / 천취와 활필 / 음양의 산수화 두 폭 / 76세, 〈인왕제색도〉 / 〈인왕제색도〉, 그 이후 / 최후의 명작 〈박연폭도〉 / 말년의 관운 / 77세, 〈괴단야화도〉 / 〈한아군상도〉 / 79세, 사도시 첨정
6부 80세~84세: 만년의 명예
겸재 80대 / 80대 노화가의 건필 / 겸재 80세, 〈노송영지도〉 / 〈사직노송도〉와 〈노백도〉 / 〈함흥본궁송〉 / 다시 장동8경을 그리며 / 말년의 명작 〈강진고사도〉 / 84세, 겸재 애사 / 겸재 예찬 / 정2품 한성판윤 추증 / 겸재 묘소 / ‘화성’ 겸재 정선
부록
조영석의 「《구학첩》 발문」
조영석의 「겸재 정동추 애사」
박사해의 「정겸재선 수직동추 서」
김광국의 《석농화원》 해제
겸재 정선 연보
참고문헌 / 도판 목록
책 소개
‘한국미술사 전도사’이자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시리즈의 저자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이 ‘새로 쓰는 화인열전’ 시리즈로 돌아왔다. 2001년에 출간된 초판 『화인열전』(1, 2권)을 전면 개정하고 새로운 내용과 도판을 대폭 추가하여 첫권 『겸재 정선: 진경산수를 개척한 우리나라 화성』으로 그 출발을 알린다. “인문학의 줄기는 문화사이고, 문화사의 꽃은 미술사학이며, 미술사학의 열매는 예술가의 전기”(초판 「책을 펴내며」)라는 신념을 고백한 저자는 우리 미술사를 빛낸 예술가들의 삶을 소개하는 작업을 학자이자 작가로서 중요한 목표로 삼아왔다. 『추사 김정희』(창비 2018)에 이어 ‘화인열전’ 시리즈까지 전면 개정을 시작하며 그 목표에 성큼 다가선 셈이다.
특히 2026년은 겸재 정선 탄생 350주년이 되는 해로, 작년(2025년)부터 올해까지 호암미술관, 국립중앙박물관, 겸재정선미술관, 대구간송미술관 등에서 겸재를 다룬 대형 전시가 이뤄졌거나 이어질 예정이라 많은 시민들이 겸재 작품을 직접 살펴보며 그 가치를 알아가고 있다. 당대에 세계적인 수준의 예술성을 바탕으로 우리 산천을 그려내 조선 진경산수화의 개척자로 평가받는 겸재 정선은 요즈음의 ‘K컬처 붐’에 누구보다 적합한 예술가이자, 우리 미술사에서 가장 먼저 다뤄야 할 화인(畫人)임이 분명하다. K컬처의 기원과 정신을 알아가길 원하는 독자에게 겸재의 예술이 가장 좋은 길잡이가 되어줄 것임은 물론이다.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중년에 재능을 꽃피운 문인화가 정선
당대의 예술을 품고 진경산수로 나아가다
저자는 겸재 예술의 여정을 세 시기로 나눈다. 첫째는 진경산수를 개척해가는 모색기(60세 이전), 둘째는 진경산수 화풍을 완성하는 확립기(60대), 그리고 셋째는 필법을 자유자재로 구사한 원숙기(70대 이후)다. 여기서도 알 수 있듯 겸재의 예술은 오히려 노년에 빛을 발했다. 84세라는 오늘날로 쳐도 초고령의 나이까지 붓을 놓지 않고 예술혼을 불태우다 별세했다는 사실을 처음 접하면 누구나 놀라게 된다. 모색기가 60세 이전이라는 사실도 놀랍기는 마찬가지다. 60세라는 요즘으로 쳐도 은퇴할 연령에 겸재 예술은 오히려 청년의 활력을 지니고 정점을 향해 달려갔던 것이다.
이 책의 전반부는 바로 이 모색기를 다룬다. 겸재는 20대는 물론 30대 전반까지도 특별한 이력이나 화력을 보이지 않았다. 제작시기가 알려진 첫 작품은 36세 때인 1711년(신묘년)에 금강산을 유람하고 그린 《신묘년 풍악도첩》이다. 그리고 이듬해인 1712년(임진년)에 다시 금강산을 유람한 뒤 《해악전신첩》을 그렸다고 전해진다. 아마도 그 전까지는 한 동네에서 교유했던 장동 김씨 김창흡으로부터 학문을, 그의 형제 김창업 등으로부터 회화의 기본기를 배우고, 장동 김씨 가옥과 사천 이병연 등 동학들의 수장품들을 보면서 회화세계를 넓혔을 것으로 짐작된다. 중국의 유명 화본을 교과서로 삼아 열심히 보고 베끼면서 연마한 것은 물론이다. 저자는 이 과정을 이렇게 평가한다.
겸재가 섣불리 자기 개성을 드러내지 않고 이처럼 고전을 차근차근 방작하는 중년의 겸손과 성실성을 거쳤기 때문에 훗날 자신의 개성에 힘과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 그것은 기초가 되어 있는 사람과 아닌 사람, 국제적(보편적) 시각을 갖고 있는 사람과 아닌 사람, 고전을 통과한 사람과 아닌 사람의 차이 같은 것이다. (…) 그 점에서 겸재는 대기만성형의 대가였다.(51~52면)
겸재는 이처럼 착실히 수련과 연찬을 거치면서 어느 시점 우리나라의 고루한 화풍을 일소하고 일정한 경지에 이르렀음을 내보였다. 그것을 볼 수 있는 작품이 이른바 ‘득의산수’로 불리는 〈하경산수도〉다. 훗날 표암 강세황이 “겸재 중년의 최득의작”이라고 평한 이 그림은 정형화되고 관념적인 산수화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겸재가 중년에 예술적으로 추구하고 고뇌하던 모든 요소가 다 들어 있다. 앞선 조선의 화가들이 추구한 절파(浙派)풍의 전통, 그리고 당대에 중국 화보를 통해 들어온 남종문인화법의 화풍, 여기에 그가 새롭게 추구하기 시작한 진경산수의 개성이 결합되어 말 그대로 득의작(작가가 뜻한 대로 이루어진 명작)을 이룬 것이다.
진경산수화로 나아가는 길은 처음부터 완벽하진 않았지만 이 역시 겸재답게 한발씩 전진했다. 《신묘년 풍악도첩》의 〈금강내산총도〉 같은 금강산도는 그가 노년에 그린 〈금강전도〉와 비교하면 도저히 같은 화가의 그림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다르다. 유홍준 관장은 그것이 새로운 시도의 초년작이 갖는 한계이자 특징이라고 판단하면서도, 그전 조선의 미미한 사생산수(실경산수) 전통을 고려한다면 이 그림들은 겸재가 새로운 전통을 창조해나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으로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말하자면 그는 진경산수의 창안자이자 완성자인 셈이다. 이후 겸재는 지방관을 두루 역임하며 국토를 탐방하고 진경산수를 남겼다. 그 여정은 《해악전신첩》(37세), 《사계산수화첩》(44세), 《구학첩》(56세)을 거치며 확립되었고, 그의 화가로서의 명성은 조선뿐 아니라 중국에까지 널리 퍼졌다. 관아재 조영석은 유명한 「《구학첩》 발문」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기며 겸재의 위상을 알렸다.
원백(정선)의 이 화첩은 먹을 사용함에는 흔적이 없으면서 번지기에는 법도가 있다. 깊고 울창하며 윤택하고 빼어나 거의 송나라 미불과 명나라 동기창 같은 대가들의 울타리 안에 들어갈 만하니, 조선 300년 역사 속에서 대개 이와 같은 사람은 볼 수 없었다.
노년에 절정을 이룬 예술
명작을 남기고 명예를 얻다
대부분의 화가들은 60세를 넘기면 세상을 떠나거나 만년기로 들어가지만, 겸재는 오히려 전성기를 열었다.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금강전도〉 〈인왕제색도〉 《경교명승첩》 《연강임술첩》 〈박연폭도〉 등이 모두 60대, 70대의 작품이니 노년의 20년간이 겸재 예술의 절정기였다고 할 수 있다. 이 시기 겸재는 몇 차례의 영남 지역 지방관 벼슬을 마무리하고 주로 서울 인근에서 관직을 얻거나 활동했다. 본래 연고였던 서울에서 다시금 절친한 예술가 및 문사들과 교유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작품을 생산하게 된 듯하다. 이 중에서 겸재의 생애 최고의 역작이자 그의 진경산수를 대표하는 작품은 단연 국보 〈금강전도〉와 국보 〈인왕제색도〉라고 할 수 있다.
〈금강전도〉는 금강산 일만이천 봉우리를 마치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것 같은 부감법의 시각으로 장쾌한 구도를 펼쳐 보이는 그림이다. 대단히 치밀한 세부 묘사에 더해 유머 감각까지 보여주는 명작 중의 명작이다. 겸재는 30대 이후로 수차례 금강산을 오르내리며 이 작품을 포함해 여러 점의 금강산 작품을 그렸고, 그 정점으로 국보 〈금강전도〉를 남긴 것이다. 저자는 이 그림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평했다.
〈금강전도〉는 이처럼 수직과 수평, 선과 점, 흰색과 검은색, 밝음과 어둠, 큰 것과 작은 것 등이 대비되면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대상의 이미지를 극대화시키기 위해 변형과 과장, 필법(筆法)의 강약, 광선의 대비를 자유자재로 구사하여 보는 이의 눈과 가슴을 압도하는 화면을 창출해냈다. (…) 비록 자연의 입장에서는 ‘틀린’ 것이지만 그림의 입장에서는 ‘맞는’ 것이고 감상자의 입장에서는 ‘감동적인’ 것으로 다가오게 되는 것이다.(25면)
이 그림은 그림 속 글귀 때문에 한동안 1734년(59세)에 그린 것으로 생각되어왔지만 이 글귀가 겸재 본인의 것이 아니라는 점이 밝혀졌다. 그런 점을 감안하면 저자는 이 그림의 화풍을 고려했을 때 겸재 70대의 작품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한다.
1751년(신미년), 76세의 겸재는 생애 최고의 명작 중 하나로 꼽히는 〈인왕제색도〉를 그렸다. 거주지였던 인곡정사 너머로 인왕산의 모습을 오직 먹으로 그린 이 대작은 겸재 만년의 원숙미가 뿜어져 나오는 진경산수의 절정이라고 저자는 평가한다. 이 작품은 비안개 걷히며 환히 드러나는 인왕산의 준수한 자태를 거의 영웅적인 감정으로 보여준다. 바위 봉우리의 미끄러운 질감을 나타내기 위해 몇 겹으로 붓질을 가하는 ‘중묵의 찰필(擦筆)’을 행했고, 그 붓길을 오직 한 방향으로만 내리긋되 각도만 달리하여 나타냄으로써 인왕산 바위 봉우리의 양감과 질감, 음영을 실감 나게 보여준다. 좌우의 산봉우리들이 햇살에 반사되는 밝은 모습은 흰빛으로 나타내어 짙은 먹빛과 강한 대비를 이루는 가운데 흔연히 어우러지고 있다.
70대에 절정의 작품들을 창조한 겸재는 만년에 관복까지 겹치며 행복한 노년을 보냈다. 81세의 나이에 뒤늦게 종2품 동지중추부사(당상관)까지 승진한 겸재는 세상의 영예를 누리면서도 붓을 놓지 않았다.
겸재의 가장 큰 복은 건강이었다. 80대에도 안경을 쓰고 작은 사물까지 묘사했을 정도로 노익장을 자랑하며 84세까지 천수를 다하도록 건필을 보였다. 〈노송영지도〉와 같이 기품이 넘치는 나무 그림뿐 아니라 일생에 걸쳐 세 번째로 그린 《장동8경첩》(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말년의 명작’으로 저자가 평가한 〈강진고사도〉 등도 이 시기의 건재함을 증명하는 작품들이다. 겸재의 동료들도 장수한 경우가 많아 노년의 예술가들의 애틋한 우정 이야기도 전해진다. 이렇게 명실상부 조선 최고의 예술가 반열에 오른 겸재는 후학들에게 깊은 영향을 남기고 8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새로 쓰는 화인열전’ 시리즈는 계속된다
인간학으로서 미술사를 위하여
이 책의 별미 중 하나는 책 뒤쪽에 실린 부록이다. ‘새로 쓰는 화인열전’ 시리즈는 자료로서의 가치를 더하기 위해 부록에도 신경을 썼다. 먼저 겸재 당시에 그에 대해 생생한 증언을 남긴 조영석과 박사해의 글 원문과 번역을 실었고, 비록 겸재의 작품을 모두 유실되었지만 조선 후기 최대의 서화 수집가이자 평론가라고 할 수 있을 석농 김광국의 《석농화원》을 해제한 글을 여러 도판과 함께 실었다. 겸재의 연보는 기년작들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알차게 꾸몄으며, 겸재 관련 주요 연구자료들도 망라했다.
‘새로 쓰는 화인열전’ 시리즈는 『겸재 정선』을 시작으로 조선의 예술가들의 삶과 예술을 깊이 있게 다루는 후속권을 선보일 예정이다. 연담 김명국, 공재 윤두서, 관아재 조영석(이상 2권), 현재 심사정, 호생관 최북, 능호관 이인상(이상 3권), 표암 강세황, 단원 김홍도(이상 4권) 등이 예정되어 있고, 현재 단행본으로 출간되어 있는 『추사 김정희』도 이 시리즈 5권에 편입시켜 조선 예술가 열전을 완비해나가려 한다.
저자 유홍준 교수가 화가(畫家)라는 말 대신 화인(畫人)을 제목으로 내세운 것은 우리 전통시대의 화인들은 현대적인 개념의 화가와 다르기 때문이다. 그들은 당대의 시인이나 문인처럼 자기 예술을 삶의 중요한 부분으로 삼으면서도 한 인간으로서 올바르게 살아가는 것을 무엇보다 중시한 이들이었다. 이처럼 저자는 화가의 전기는 단지 인물사로서 미술사에만 그쳐선 안 되고 당대와 보편적 가치를 함께 다루는 인간학으로서 미술사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것이 이 책에서 『겸재 정선』의 삶과 작품을 바라본 시각이며, 앞으로 ‘새로 쓰는 화인열전’ 시리즈가 추구하게 될 방향이라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K컬처의 힘과 자부심의 원천에는 바로 이러한 인문정신이 있음을 우리는 겸재와 저자의 예술혼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